도움을 주신 blesshy 님, 건전청년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져주신 다른 분들께도 모두 감사 드립니다.
Ⅱ. 작품과 상품그러면 우선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에서 추구한 주제는 무엇인가? 쉽다. 에반게리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대답한다. '마음'이라고. 사람마다 조금씩 표현이 틀리긴 하지만 그런 대답을 한다. 에반게리온은 각 등장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그로써 성장해 가는 신지의 내면.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그로 인해 붕괴해 가는 아스카의 내면. 자신의 마음이라는 존재조차 모르다가 점차 그것을 깨달아 가는 레이의 내면. 누구나가 쉽게 그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단 주제의 전달 측면에서는 성공한 것인가? 불행히도 아니다. 누구나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에반게리온에 탑승한 신지가 괴로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누구나가 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마음에 지속적으로 주목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사도는 무엇인가, 인류 보완 계획은 무엇인가.
안노 히데아키는 마음, 즉 인간의 내면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에반게리온에 담아 톱을 노려라를 극복했다. 이제는 왕립우주군의 실패를 피해야 할 차례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마음이라는 주제가 가지는 딱딱함을 가리기 위해, 안노는 그것에 장식품을 주렁주렁 매단다. 최근 유행하는, 그리고 흥미를 자아내기에도 용이한 온갖 오컬트적인 요소 - 세휘롯의 나무, 사해문서, 말두크 기관……. 그리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유발하는 온갖 비밀들 - 사도, 인류 보완 계획, 제레, 네르프, 서드 임팩트……. 완벽하다. 왕립우주군의 '주제'와 톱을 노려라의 '재미'가 합쳐진 '오리지널'의 탄생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대한 실수가 발생한다. 매달린 장식품이 안노의 기대 이상으로 지나치게 멋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에반게리온의 '재미'라는 측면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재미'는 말 그대로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다. 사도가 왜 오는지, 제레가 무엇을 꾸미는지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사도가 와서 생긴 사건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제레가 꾸미는 계획에는 그들의 어떠한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가. 사도 따위는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다. 단지 인물들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아담은 아무런 비밀도 없다. 단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켜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게, 그럼으로써 주제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민한다. '왜 사도가 오는 걸까', '아담은 도대체 무엇일까'. 에반게리온은 장식품에 눌려 질식사하려 하고 있다.
그 예를 들어보자. 에반게리온 제 9화(신지와 아스카의 유니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 장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이들이 주저없이 대답한다. 신지와 아스카가 멋진 유니존으로 화려한 액션을 펼쳐 사도를 물리치는 62초간이라고. 확실히 그 장면은 멋지다. 음악과 액션이 어우러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멋진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클라이막스인가? 이 제 9화의 제목이 '순간, 마음, 합쳐서' 라는 것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주제는 '마음'이라는 것도. 즉 제9화의 클라이막스는 신지와 아스카의 마음의 묘사가 극에 달한 부분이다. 단 여기서 둘의 마음이 합쳐진 결과의 묘사는 중요치 않다. 마음에서 '이렇게 되었다' 식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의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의 과정, 마음의 섬세한 움직임이다. 마음을 합쳐 멋진 액션을 내기 위해 신지와 아스카는 어떤 마음의 과정을 거쳤는가. 그것이 제 9화의 전편에 걸쳐 묘사되어진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는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이다.
함께 훈련을 하며 서서히 서로를 이해해 가면서도 서로에게 반발하는 신지와 아스카. 그리고 작전 실행 전날. 아스카는 잠결에 신지의 잠자리로 들어온다. 놀라면서도 끌리듯 다가가던 신지는 잠든 아스카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순간 신지의 마음은 '움직인다'(여기서는 테잎의 감김을 통해 그것을 시각화한다. 테잎을 PLAY하고 있던 신지. 그러나 아스카의 기척이 들리자 그것을 꺼버린다. 하지만 아스카가 자기 잠자리에 누운 것을 깨닫는 순간, 신지는 테잎의 빨리 감기를 눌러버리고 만다. 그리고 아스카의 마음을 이해했을 때, 테잎은 끝까지 다 감긴다). 바로 그 순간이 클라이막스인 것이다. 그러나 '멋진 액션'이라는 장식품에 이 클라이막스는 가려지고 만다.
한편, 이러한 어긋남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에반게리온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아야나미 레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레이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는 늘 2위와 더블 스코어 차로 1위를 하고, 캐릭터 상품도 엄청나게 팔렸다. 에반게리온을 본 이들은 대부분 레이의 팬이 되어 이러한 대열에 합류한다. 상업주의적 측면에서는 분명히 대 성공이지만,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레이는 단순히 '자신의 마음의 존재조차 모르다가 점차 그것을 깨달아 가는' 독특한 마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케이스에 불과하다. 레이는 작품 내에서 주제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충실히 자신의 마음을 묘사해 간다. 이것은 나머지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는 그러한 도구적 가치를 위해 철저히 짜 맞춰져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그러한 캐릭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히로인 상의 창조라는 극찬도 듣고 있다. 그러면 레이의 마음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공부하라고 책을 줬더니만 책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책표지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격이다.
레이가 인기를 얻게 된 결정적 장면인 6화 마지막의 미소짓는 시퀀스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소 그 자체에 열광한다. 레이가 미소를 짓게 한 '마음의 움직임'은? 골치 아프게 그런 것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레이의 아름다운 미소를 감상하기에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따져야 하나. 맞는 말이다. 아름다운 미소를 놔두고 딱딱한 주제를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짓이다. 단, '아름다운 미소'라면 말이다.
6화의 라스트 신은 레이가 가장 도구적으로 묘사된 부분이다. 레이는 묘사하는 마음의 특이성 상 감정의 표출이 극단적으로 적은 캐릭터이다. 마치 인형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는 - 웃고, 울고, 화내는 -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언제나 무표정으로 있어야만 한다. 레이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주제의 표현을 위해서 '사용될 때' 뿐이다. 레이는 그 순간에 도구로써 미소짓고, 눈물을 흘린다. 자, 아직도 레이의 미소가 아름다워 보이는가? 진정한 레이의 팬이라면 6화의 라스트 신에서 분노를 느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저토록 노골적으로 도구화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 장면에서 분노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레이의 미소가 아름다워' 하며 행복해 할 뿐. 따라서 레이는 단 한 사람의 팬도 가지지 못한 캐릭터인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단 한 명의 팬도 없다. 이것이 바로 크리에이터로서 기가 막힐 노릇인 것이다.
이렇게 에반게리온은 실패했다. 분명히 재미도 있었고 돈도 많이 벌은 오리지널이지만, 주제의 전달은 완전히 실패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의 재미에 열광하고, 그 상업적 성공을 본받으려 한다. 그들에게 에반게리온은 다만 상품일 뿐, 작품이 아니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에반게리온은 무엇을 말하고자 한 작품인가'.
안노 히데아키는 이 에반게리온에서, 이전까지 자신이 작품의 '실패'라고 생각해 왔던 것, 적자를 벗어난다. 그러면 실패를 벗어나 성공을 이루어 낸 것인가. 적자는 벗어났다. 하지만 과연 실패란 적자만을 의미해왔던 것인가. 진정한 의미의 실패란 것이 있지 않을까. 흥행사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의.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つづ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