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절대로 에반게리온에 대한 안노 히데아키의 '공식적인' 입장을 담은 글이 아닙니다.
개인이 모은 자료와 그것을 근거로 내린 판단에 따라 에반게리온의 내용을 해석하고 유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주장을 적은 것이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개인의 망상이라고 조차 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 이 글의 내용을 절대적인 것 혹은 공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주십시오.
Ⅳ. THE NUDE OF EVANGELION마야 『본부 시설의 출입이 전면 금지?』
마코토『제 1종 경계 체제를 유지한다고?』
마야 『어째서? 최후의 사도였다고 했잖아? 그 소년이』
시게루『그래. 분명히 모든 사도는 사라졌어』
마코토『이제부터 평화로워 지는 것이 아니었나』
마야 『그러면, 이곳은? 에바는 어떻게 되지?』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THE END OF EVANGELION'의 도입부에 나오는 대사이다. 에바는 어떻게 되지? 사도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로써 모든 것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완결편'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이야기가 진행되려 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되지? 사도는 소멸되었다. 하지만 에바는 계속된다. 사람들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달리, 사도란 소멸되어도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정지시키지 못하는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다. 에반게리온은 계속 된다. 진정한 작품의 의미,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므로.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또 하나의 장식품이 떨어져 나간다. 인류 보완 계획. 지금까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아내어왔던 최고의 비밀을, 미사토가 등장해 '인류 보완 계획은 ∼이다' 라고 술술 이야기한다. TV판에서 그토록 감춰왔던 거대한 비밀이 너무도 쉽게, 순식간에, 그것도 영화 초반부에 풀려 버리는 것이다. 관객들은 배신당한 기분이 들게 된다. 인류 보완 계획 같은 거대한 비밀, 에반게리온의 중요 테마(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영화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때에 복잡하게 뒤엉킨 음모와 더불어 그 진상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어이없이 배신당했다. 당황한 관객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세컨드 임팩트의 진짜 의미가 설명된다.
지금까지 에반게리온을 가리고 있던 주요 장식품 3개(사도, 인류 보완 계획, 세컨드 임팩트)가 순식간에 벗겨졌다. 이제서야 관객들이 진정한 에반게리온과 마주 볼 수 있는 상황이 설정된 것이다. 아직 벗겨진 장식품에 연연해하는 이들이 있을 지라도.
보름달이 비치는 밤. 신지는 잠자리에서 언제나처럼 테잎을 듣고 있다. 이전 TV판 제 9화의 설명에서도 밝혔듯이 이 테잎은 신지의 마음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표현물이다. 그런데 지금 이 테잎의 움직임이 멈춰있다.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액정 화면에는 0 이라는 숫자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다. 신지의 '마음'은 정지해 버렸다.
그리고 제레의 네르프 침입이 개시된다. 우선 소형 마기타입 다섯 대가 동원되어 네르프 안의 오리지널 마기에의 해킹을 감행한다. 네르프는 이러한 위기를 리츠코 박사의 복귀를 통해 해결한다. 그리고 그 순간 겐도우는 말한다. "리리스, 그리고 아담조차 우리들에게 있다" 라고. 하지만 TV판이라면 모를까, 이 극장판에서 이러한 겐도우의 대사는 자신들의 몰락만을 상징할 뿐이다. 이미 앞서서 3개의 거대한 장식품이 해체되면서, 에반게리온에서는 이제 더 이상 장식품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임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겐도우는 리리스와 아담(이들 역시 주요 장식품들이었다)을 가지고 있음에 자신 있어 한다. 아직은 자신에게 힘이 있는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겐도우의 모습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투영되어 있다. 사도, 인류 보완계획, 세컨드 임팩트가 사라졌어도 아직 에반게리온을 지탱하는(자신의 호기심을 지탱하는) '상품'으로 리리스와 아담이 남아 있다. 관객들은 그렇게 확신하고 자신을 가진다. 그들은 겐도우와 함께 힘주어 외친다. 아직 리리스와 아담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부분에서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되어 버린다. 정말 독특하고도 놀라운 방법으로 안노 히데아키는 장식품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나쁘게 말하면 관객들을 철저하게 깔보고 있다).
다시 작품에서는 군대에 의한 네르프 시설의 직접 점령이 행해진다. 네르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사도라는 적이 아닌 인간을 상대로 전투 배치에 들어가고, 군인들은 그러한 네르프의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설을 파괴한다. NERV 마크위에 번지는 피. 이 상징적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네르프에 종국이 찾아 왔음을 알게 된다. 주요 장식품이던 네르프의 종국이다. '마음' 이라는 주제를 가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왔던 네르프의 시설이 모두 부서진다. 그리고 군인들은 최종적으로 에반게리온마저도 파괴하려 한다.
이전에 장식품 해제에 큰 몫을 한 미사토는 다시 새로운 움직임에 들어간다. 아스카는 에반게리온 2호기에 태워져서 지저 호수에 숨겨진다. 레이는 소재불명. 신지는 에반게리온에 타는 것을 거부한다. 미사토는 네르프의 수비를 제쳐둔 채 신지를 보호하러 간다. 장식품인 네르프를 버리고 신지에게 가는 미사토의 행위. 주제가 신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어질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지에게 주목해야 한다. 그를 통해 주제를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고 감독은 선언한다. 한편 주제에 반하는, 장식품에 연연하는 겐도우는 레이를 이끌고 어디론가 간다. '약속의 때다……. 자아, 가자'라는, 훌륭한 '장식품'이 될 수 있는 대사를 남기고.
군인들이 신지를 발견해 사살하려는 순간, 미사토가 등장해서 신지를 구해낸다. 장식품적 존재인 네르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군인들도 신지만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신지라는 캐릭터의 주제 표출에 있어서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는 순간이다. 한편 군인들은 에반게리온 초호기 주위에 베이클 라이트를 주입, 파일럿인 신지와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물리적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다. '물리적'은 차단되었다. 그러면 '마음'은?
그런데 이상하다. 미사토는 신지를 이끌어 초호기와 '마음'으로 접촉하게 해 주제를 표현해야하건만, 정작 신지 본인은 일어서려 하지도 않는다. '…이제, 싫어. 죽고 싶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라는 말까지 해 버린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 해답은 이후의 신지의 대사에서 밝혀지게 된다.
네르프의 점거를 위해 핵병기까지 동원된다. 그리고 네르프의 마야는 절규한다. "어째서 그렇게 에바를 갖고 싶어하는 거야?!" 작품 에반게리온의 중요 주제는 마음이다. 하지만 어째서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이라는 상품에 집착하는 걸까. 일러스트를 사고 프라모델을 사고……. 마음이라는 주제가 없는 에반게리온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지 허상에 불과할 뿐인데. 그리고 다시 미사토의 장식품 해제 코너(!). 이번에는 서드 임팩트의 의의를 말해 줌으로써 그 장식품을 벗긴다. 덤으로 사도와 인류에 얽힌 수수께끼도 하나 풀어준다.
지저 호수 속의 에반게리온 2호기를 발견하고 폭탄 공격을 가하는 군인들. 그 폭발 속에서 아스카는 신음한다.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 죽는 건, 싫어어엇!!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아직 살게 해줘, 아직 죽는 건 안돼, 죽이지마, 아직 죽을 수 없어
아스카는 어떤 존재이기에 모든 장식품이 파괴되는 이 상황에서 자신의 생(生)을 외치는 것일까.
TV판에서 자아붕괴가 되어 '마음'이 없어졌던 아스카. 그녀는 그 폭발의 순간 에반게리온 2호기 속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그 순간 되돌아오는 아스카의 마음. 그리고 눈을 뜨는 2호기. 장식품이라는 허상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이 담겨지는 순간 에반게리온은 재가동되었다. 이제 진정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 어울리는 존재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아스카의 존재도 분명해졌다. TV판에서 간접적 방법으로 전달하려다가 실패했던 '마음'이라는 주제. 아스카는 그것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다시 한번 자신을, 즉 간접적으로 설명되는 마음을 전달할 기회를 부여받으려 하고 있다. 그러기에 아스카는 외친 것이다. 죽는 건 싫어!
주제 전달이라는 절대적 상징이 된 아스카와 2호기. 그들은 그 힘을 과시하듯이 군대를 가볍게 격파해 나간다. 부활한 아스카 앞에 군대는 마치 장난감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 정도로 아스카는 강력한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제레의 역할 전환이 이루어진다. 장식품이던 네르프를 파괴하던 제레가, 주제를 나타내는 (더 정확히는 TV판에서 시도되었던 간접적 방법을 이용한 주제의 전달을 상징하는) 에반게리온 2호기의 제압을 결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스카와 2호기가 진정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한다. 9기의 에바시리즈의 투입. 그것들에는 파일럿이 타고 있지 않고 대신 더미플러그로 움직이고 있다. '마음'을 가진 파일럿이 없이 움직이는 에바시리즈. 이 '에바시리즈'는 순수한 에반게리온의 장식품적 의의만을 추출해 구성되어진 존재들이다. 주제를 상징하는 에반게리온 이호기와 장식품을 상징하는 에바시리즈의 격돌. 이 극장판의, 아니 '에반게리온'이라는 모든 의미에 있어서의 클라이막스다.
'마음을 가진' 아스카는 '마음이 없는', 단순히 더미플러그로 움직이는 에바시리즈를 무참히 쳐부순다. 그 모습은 참혹하다는 표현만이 어울린다. 쏟아지는 피, 으깨어지는 머리, 움켜잡혀 뽑히는 창자. 아스카가 기합을 외치듯이 안노 히데아키도 외친다. 봐라, 이것이 마음을 가진 에반게리온과 그렇지 못한 에반게리온의 차이다. 장식품으로써의 에반게리온은 이처럼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만약 여기서 그친다면 이 부분은 단순히 감독의 자기 만족을 위한 장면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러나 안노는 복수의 쾌감에 열중한 나머지 작품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일 없이(만일 그런다면 자신이 욕하던 시청자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지 않는가), 단순한 복수전이 아닌 주제의 표출을 나타내는 싸움으로서의 도약판을 마련한다. 단, 이것은 약간 후의 이야기지만.
신지를 이끌고 초호기가 있는 곳으로 가던 미사토는 총에 맞는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느낀 미사토는 신지에게 이제부터 혼자 해 나갈 것을 부탁한다. 이미 미사토는 장식품의 해제, 주제 표출 캐릭터의 부각이라는 일을 해내었으니 자신의 모든 존재 가치를(작품내에서의) 이루어 냈다. 이제는 메인 캐릭터인 신지 혼자서 할 차례이다. 그 편이 주제 전달에 더욱 효과적일 테니. 그러나 신지는 이러한 미사토의 부탁을 거절한다.
지금까지 신지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에반게리온에 탔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단지 각자의 소비자로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어져 왔을 뿐이다. 주제 표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어야 할 신지 자신이, 오히려 주제를 가리는 장식품으로서의 역할만을 해 오게 된 것이다. 에반게리온에서의 신지의 존재가치는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단지 죽고 싶다. 주제 전달에 방해만 될 바에야 사라지는 것이 낫다. 신지는 울면서 이러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토로한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에바에 탈 가치도 없어요' 확실히 TV판에서 신지가 에반게리온에 타는 것은 오히려 장식품의 지배만 강화시켰을 뿐이다. 신지가, 에반게리온 초호기가 싸울 때마다 사람들은 그 전투의 묘사와 액션에 빠져 들어갔다. 결국 신지가 내린 결론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아요!'이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 에반게리온에 타 봤자 관객의 소비자로서의 욕구만 충족시킬 뿐이다. 어차피 자신은 에반게리온에 타봤자 주제를 제대로 전달 못한다. 싫다. 이것은 어쩌면 안노 스스로의 독백일까……. 이러한 신지-안노를, 미사토는 사력을 다해 설득한다. 그녀는 신지를 설득해 다시 에반게리온에 타게 할 수 있는, 안노를 설득해 다시 에반게리온을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다(미사토라는 캐릭터의 모티브는 안노 히데아키의 이상형의 여성상이 투영되어 만들어졌었다).
미사토의 간절한 설득의 말들. 신지를, 안노를, 미사토 자신을, 크리에이터로서의 안노 자기 자신을 위한 말들. 그 모든 말들 끝에 미사토는 신지의 손에 자신의 목걸이를 쥐어주며 말한다.
"한번 더 에바에 타서 결말을 지어. 에바에 탔었던 자신에게. 무엇을 위해 이곳에 온 건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 건지. 지금의 자신의 답을 찾아봐"
미사토와 약속을 하는 신지 - 안노. 결국 주제를 다시 한번 전달하기로 그(들)는 결심한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은 다시 한 번 시작된다.
"잘 다녀와"
신지와 미사토의 키스. 신지를 보낸 후에, 미사토는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든 할 일을 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충분히 발휘했다. '나, 이걸로 된 거지' 그 말을 끝으로, 미사토는 죽는다.
하지만 그 때, 죽은 미사토를 바라보는 레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은 접어둔 채, 이야기는 계속된다.
つづ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