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다녀오겠습니다. 금요일에 돌아옵니다.
진득하게 긴 포스팅을 올려 두었으니, 느긋하게 봐 주시길.... -.-ㆀ
Ⅴ. 그리고, 진심을 너에게……자신이 진짜 주제를 알릴 것이라 포효하는 신지와 초호기. 에바시리즈는 그런 신지에게 동조하여 초호기에게 다가간다. 초호기가 펼친 날개를 물고 무언가를 만드는, 마음이 없는 에바시리즈. 이들은 함께 상승해 간다. 그것을 땅바닥에서 지켜보는 이호기의 잔해.
초호기와 에바시리즈는 계속 하늘 높이 상승해 간다. 주제를 나타내는 초호기를, 주제를 뒷받쳐주기 위한 재미를 나타내는 장식품인 에바시리즈가 들고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다. 주제와 재미의 결합. 안노 히데아키가 최초에 추구했던 이상적인 작품의 모습이 하늘 높이 솟아 올라간다. 그것을 본 후유츠키는 중얼거린다. '제레놈들, 초호기를 매개체로 할 작정인가' 초호기가 주제 표출의 매개체로 쓰인다는 것은 앞에서 드러났다. 그러면 반대로 초호기를 매개체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제레의 목표는 무엇이 되겠는가? 제레는 말한다. '우리들의 하인, 에바시리즈는 모두 이때를 위해서' 장식품들은 주제 표출을 위해서 존재했었음이 다시 한 번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초호기와 에바시리즈는 세휘롯의 나무 형태를 취한다.
지상은 혼돈에 빠진다. 차원 측정치 반전, 안티 AT필드, 서드 임팩트의 전조, S2기관 임계, 분자간 인력 유지불능. 전략자위대 대장은 작전의 실패를 선언한다. 그의 임무는 장식품으로서의 모든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제와 장식품의 이상적 합일이 선언된 것이다. 겐도우는 계속 레이에게 자신의 의지를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레이는 겐도우의 팔을 흡수해 버린다. 다른 장식품의 동조를 얻어 상승하는 초호기. 아직도 장식품에 얽매인 겐도우. 레이는 그런 겐도우를 버리고 진정한 '에반게리온'을 상징하는 신지를 선택한다. 선택한 레이가 겐도우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야' 경악하는 겐도우. '나는 당신이, 아닌 걸' 겐도우가 아닌 것. 주제, 바로 마음. 여기서부터 레이는 '마음'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이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획득한 레이. 붕괴되어가던 형태를 보존할 수 있게 되어, 떨어졌던 팔을 복구한다. 돌아와 달라고 절규하는 겐도우를 버리고, 레이는 리리스에게 다가간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마음(heart)을 상징하는 레이가 리리스의 가슴속으로 들어가자, 리리스의 심장(heart)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리리스(주요 장식품 중 하나였다)는 불완전한 형태에서 벗어나 완전한 형태를 갖춰 가고, 가면이 벗겨진다. 즉, 신지는 장식품이 자신을 뒷받치게 해 주제를 표출하고 레이는 자신이 장식품에 직접 들어가 주제를 표출한다. 그리고 이 둘은 최종적으로 서로 결합하려하고 있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안노게리온'을 위해서.
완전체 레이는 구름을 뚫고 솟아올라 신지의 앞에 선다. 제레는 다시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설명해 준다. '에반게리온 초호기 파일럿의 결핍된 자아를 가지고 사람들의 보완을' 쉽게 말해 신지의 마음을 설명해 가는, 주제를 실행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제레의 말 중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갑자기 킬 로렌츠가 '세 번의 보답의 때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냥 아무 뜻 없는 말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세 번'이 의미하는 것이 왕립 우주군, 톱을 노려라, 나디아 세 작품이라고 대입하면 매우 재미있어진다.
에바시리즈의 AT필드가 공명, 증폭하고 레이와의 동화가 시작된다. 에바시리즈의 입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꾸역꾸역 나오기 시작한다. 뇌를 드러낸 레이, 그것을 보고 다시 포효하는 신지와 초호기. 신지는 공포가 극에 달해 있다. 주제 전달이라는 무거운 중압감이 그를 고통에 못이겨 절규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멈출 수는 없다. 초호기의 가슴이 열리며 코어가 드러난다. 코어 - 중심, 핵의 의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자명하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이제 싫다고 신음하는 신지. 그때 미사토가 건네준 목걸이가 클로즈업되며 카오루의 목소리가 겹친다. 카오루의 모습을 보고 안정을 되찾는 신지(사실 이 카오루는 신지의 안정을 위해 레이에서 상반신만 갈라져 나온 모습이다). 신지는 미소짓고, 자신의 임무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다.
마야는 아오바의 옷깃을 붙잡고 신음하듯 물어본다. '저 우리들, 옳은 거겠지' 이 컷은 과감한 부감쇼트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극장판 에반게리온 연출의 가장 두드러지는, 그리고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인 카메라 촬영각도에 대해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촬영각도는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상적인 인물의 눈높이인 수평각(Eye Level), 높은 데서 아래를 보는 부감(High Angle), 낮은 데서 높게 바라보는 앙각(Low Angle). 그 중 부감은 보여지는 내용물을 보잘것없고 나약하게 만드는 심리적 효과를 관객에게 준다. 도입부에서 아스카를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신지, 왜 에반게리온이 계속되는지 이해 못하는 마야, 군대에게 공격당하는 네르프의 전경, '마음'이 없이 사출되는 이호기, 총쏘기를 두려워하는 마야, 초호기에 타는 것을 거부하는 신지,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이호기 안에 웅크린 아스카, 장식품적 가치를 좇아 리리스 앞에 선 겐도우와 레이, 주제 전달에 실패하고 먹히는 이호기, 자신을 버린 레이에게 애원하는 겐도우, 주제 표현의 중압감에 못 이겨하는 신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는 마야. 이 모든 것들이 부감쇼트로 표현되어져 그들의 보잘것 없고 나약함을 관객들에게 시사한다. 반대로 앙각은 위협적이며 힘을 지닌 존재처럼 내용물을 인식시켜 권위를 부여한다. 네르프의 직접 점거를 명하는 제레, 신지를 구하러 가기 위해 총을 장전하는 미사토(유명한 장면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지를 이끄는 미사토, 마음을 되찾아 군대를 격파하는 아스카와 이호기, 겐도우를 저지하려는 리츠코, 겐도우와 레이의 앞에선 리리스, 초호기와 동조해 상승해 가는 에바시리즈, 초호기와 에바시리즈가 만든 세휘롯의 나무, 레이와 합체해 완전체가 된 리리스, 보답의 때를 말하는 킬 로렌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준비를 끝낸 신지.
이처럼 정(正)과 반(反)으로 나뉘어지는 두 무리의 컷들이 배열되어 주제 표현과 그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이끌어 내고 있다. 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주제적 가치, 감독의 관점들을 이해하려면 카메라 촬영각도의 묘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 극장판 에반게리온은 그러한 기법이 매우 잘 사용되어지고 있다. 주제를 말하고 내용을 진행시키는 것은 대사와 행동만이 아닌 카메라 앵글에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주는 좋은 예이다.
신지가 마음의 준비를 끝마치자, 유이와 레이가 그를 이끌어 자신의 내면을 보이게 한다.
『지금의 레이는, 너 자신의 마음』
원래 TV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직시해감으로써 성장해 가는 신지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묘사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식품에 정신이 팔려 신지의 마음을 살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직접적인 방법으로 신지의 내면이 묘사된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단순하게 '∼하다.'라는 말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심리란 그렇게 명확히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몹시도 추상적인 것이다. 그러한 심리를 묘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역시 추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TV판 25, 26화에서도 쓰인 방법이지만 극장판에서는 말과 글자의 설명을 줄이고 영상과 소리 만으로, 훨씬 더 추상적으로 심리를 묘사한다.
신지의 어릴 때 추억, 아스카와의 대화 등이 나오며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추상적인 장면과 대사가 오간다. 만일 여기까지도 장식품에 연연해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 난해함은 극에 달한다. 관객은 이러한 추상적인 요소들을 TV판에 나왔던 알 수 없고 다소 추상적인 대사들, 장면들과 마찬가지인 장식품으로 치부해 버리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겉잡을 수 없다. 그 때는 이미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려 자기 혼자서 만든 좁은 관념의 틀에 갇혀버리고 만다. 과연 저 장면과 대사는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거나 자기 멋대로 해답을 내놓고는 기뻐하는 파라독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이러한 함정을 설치해 주제 대신 장식품을 택한 관객을 에반게리온 밖으로 추방해 버린다. 이와 같은 함정에 빠져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심리묘사를 굳이 풀어 보려 애쓰지 말고 추상적인 느낌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럴 때 언어적 표현으로는 너무나 난해한 심리 묘사가, 이성적으로는 너무나 쉬운 의미의 물결이 되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따라서 지금 이 글에서는 신지의 내면을 묘사하는 영상과 소리를 분석할 필요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다. 그 추상적 전달을 글로 풀어 전달하려 한다면 오히려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서 벗어나갈 뿐이다. 물론 온갖 심리학적 지식이 동원되어 전문 용어로 해설한다면 어느 정도 전달이 가능하겠지만, 그래서는 효과도 떨어질뿐더러 감독의 의도에 어긋나 버리고 만다. 기껏 주제를, 인간의 내면을 가능한 한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관객이 그것을 보고 '직접' 받아 들여야 작품의 의의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신지의 심리 묘사 부분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스스로 분석했으면, 아니 '느껴' 주었으면 한다.
단, 이 같은 심리 묘사, 즉 주제 그 자체는 분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면 부분 부분에 나오는 주제의 방법론적 측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충분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캐릭터로서의 신지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감독 본인이다. 여기 놓인 것은 신지의 내면이기도 하지만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 자신의 내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신지'의 심리 묘사 장면에서는 안노의 내면 요소들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주제의 방법론적 측면에 대한 안노의 생각이다. 자신의 이상이 담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이끌어 가는 방법에 대한 크리에이터로서의 토로. 안노는 에반게리온 TV판에서 주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다가 실패한다. 그는 TV판을 DEATH라 치부해 버리고 다시 한 번 작품으로서의 에반게리온,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신의 REBIRTH를 시도한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이 극장판 'THE END OF EVANGELION'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분석된 바와 같이 극장판에서 안노 히데아키는 주제의 간접전달 실패를 선언하고 충격적일 정도로 직접적인 방법을 시도하 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간접 전달을 포기하고 직접전달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안노 히데아키가 원하는 것인가? 그 해답은 그의 내면에 있다.
우선 신지의 내면 묘사 중 아스카와의 대화. 여기에 지금까지 정해진 정의, 신지가 주제의 직접 전달을 상징하고 아스카가 주제의 간접 전달을 상징한다는 정의를 대입시키면 이 대화를 주제 전달의 방법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스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내 옆에 오지마!』
신지 『…알고 있어』
아스카 『알지 못하면서. 바보!』
신지는 아스카를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알지 못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아스카의 방법이 실패하고 지금 신지의 방법으로 주제가 표현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스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 방법은 오직 그 방법으로써만 표현 가능한, 직접적 방법으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제를 표출하고 있는 신지는 그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아스카를 알 수 있다고, 아스카가 전달하려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카는 그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신지에게, 감독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아스카와 이호기는 주제 전달에서 실패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고 에바시리즈에게 처참하게 당했었다. 그러나 신지와 초호기는 에바시리즈를 동조시키는 것에 성공해 지금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지는 아스카의 존재를-
『구해줬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스카가 날카롭게 외친다.
『그거야말로 거만한 잘난 체야!』
아스카는 신지에게 다시 말한다. 당연히 알 수가 없지 않냐고. 간접적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직접적으로는 당연히 알 수 없지 않냐고. 그리고 신지는 그것을 인정한다.
이번에는 주제에 대해 약간 다른 관점에서의 신지와 레이의 대화가 오간다. 앞의 신지와 아스카의 대화가 주제전달 방법 각자의 차이와 그로 인한 신지가 메꿀 수 없는 부분을 논했다면 이번의 신지와 레이의 대화는 주제전달 방법으로서의 신지 그 자체가 논해진다. 레이는 말한다.
『진실된 것은 모두를 상처 입히니까.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괴로우니까』
상품적 재미가 아닌 진실된 가치로서의 에반게리온. 그것은 지금까지 에반게리온을 상품으로 받아들여왔던 모든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진실된 작품을 말할 때 오히려 시청자를 상처입힌다는 것은 감독으로서는 너무나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자신의 크리에이터로서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도망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실은 에반게리온은 상품적 재미만을 추구한 것이다'라고 해 버리면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진실된 에반게리온은 과연 꼭 필요한 것일까? 그러한 의문 속에서 신지는 자신이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가를 고민한다.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신지는 슬퍼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자신이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었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었다. 이전에 미사토와의 대화에서 나왔던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이 다시 되풀이된다(벌써 인식한 사람도 알고 있겠지만, 이 심리 묘사 부분은 극장판 내용 처음부터 끝까지의 인물들의 내면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순서가 약간 틀린 부분도 있지만, 극장판의 흐름은 심리 묘사 부분의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 심리 묘사부분은 극장판 내용이 압축되어 나타내어진 설명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러니까 모두, 죽어버려. 내가 있건 없건, 어느 쪽이나 똑같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모두 죽어 버려』
그런 신지에게 레이가 묻는다. '그러면, 그 마음은 무엇을 위해 있어?' 인간의 내면이라는 주제를 표출하는 한 케이스로 신지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레이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지는 계속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아. 그러니까 나도 죽어버려' 작품 내에서의 자신의 의의를 부정하는 신지. 레이는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러면 왜 이곳에 있어?' 신지는 지금 이곳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 지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정해도, 그는 이곳에 '있다'. 그리고 신지는 솔직해진다.
『이곳에 있어도, 괜찮아?』
심리 묘사가 끝나고 다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반게리온 전 기체 건재. 그들은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대기권에 떠있는 검은 달을 이제는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신지와 레이의 완전체가 손으로 감싼다. 안티 AT 필드의 임계점 돌파, 개체 생명의 형태 유지 불능. 12장의 거대한 날개를 펼친 완전체. 이제부터 무엇이 시작되려 하는가?
네르프에서 죽어간 모든 시체들 앞에 레이가 서 있다(레이가 '마음'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주길 바란다). 사람들의 육체는 이미 형태를 잃고 액체로 환원되었다. 남은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레이, 즉 마음뿐이다. 미사토에게도, 리츠코에게도,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 에게도 '레이'가 나타난다. 그 동안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그들의 마음이 보여진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 온 심리적 비밀, 원념을 눈으로 보게 된다. 마코토의 미사토에 대한 욕망, 시게루의 레이에 대한 욕망, 후유츠키의 유이에 대한 욕망, 마야의 리츠코에 대한 욕망. 이 모든 마음들이 보여지고, 그들의 육체는 사라진다. 에반게리온에서 주제 이외의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이에 맞추어서 에바시리즈들도 모두 할복하듯 자신들의 코어를 찌른다. 장식품 그 자체이던 그들이 스스로 코어를 찔러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로써 에반게리온은 마음만이 남는다. 에반게리온이라는 모든 의미가 마음이라는 한 점에 모인다. 온 세상을 인간들의 마음이 환원된 빛의 십자가가 덮어간다. 세상은, 인간은, 그리고 에반게리온은 보완되어서 그 진정한 의미로 가득 채워져 가고 있다.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생명의 나무는 완전체 레이의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신지는 수많은 '레이'들이 흐르는 것을 보게된다.
갑자기 영화는 실사화면으로 바뀐다.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현실의 도쿄, 사람들, 거리 그리고 극장에 앉아 에반게리온을 보고 있는 관객들 자신. 지금까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 내에서만 논의 되어진 주제를 현실로, 현실의 인간들에게 전해주려 하고 있다.
-그러면, 나의 꿈은 어디?
-그것은, 현실의 계속.
-나의, 현실은 어디?
-그것은, 꿈의 끝이야.
에반게리온에 대한 거짓, 꿈을 끝내라. 그곳에 현실이 있다!
つづ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