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 울 적에 견문기록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세계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당신이 세계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오니카쿠시 편(鬼隠し編)의 오프닝》



자, 이곳에 한 개의 '미스테리 사건'이 있습니다.
범인은 불명, 사용된 트릭도 불명. 오로지 피해자의 절규만이 남아 있는 처참한 사건.
당신은 이 사건에, 어떤 '해답'을 바랍니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탐정이 나타나서 증거를 모아 범인을 추적하지요. 그 와중에 또 이런저런 사실들이 밝혀지고, 마침내 탐정은 모든 이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범인은 이 안에 있다!"
뭐 이야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사건에서 작가가 내놓는 해답이란, 그리고 독자들이 원하는 해답이란 그런 겁니다. 범인은 누구이고, 그 동기와 트릭은 이러하다.

그러면 말이지요.

이런 해답은 어떠신가요?

제가 이 블로그에서 상당히 자주 언급하던 게임인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입니다.
게임의 장르는 사운드 노벨(주의! 비주얼 노벨이 아닙니다)입니다만...사실 이것을 '게임'이라 할 수 있는지는 상당히 애매하지요.
우선, 이런 식의 텍스트 어드벤쳐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클릭해 문장을 넘기는 것 뿐. 이래서야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행위'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파생되는 것-각 루트가 별도 발매 되었습니다. 다른 게임들처럼 이 선택지 다음에 저 선택지를 고르면 A 히로인, 저 선택지 다음에 나오는 그 선택지를 고르면 B 히로인이라는 식이 아니라 아예 각 루트가 다른 제목이 붙어서 발매가 되었습니다. 오니카쿠시 편, 와타나가시 편...이런 식으로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임다운 요소라고는 없는 작품입니다만, 제작자는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게임이다'라고.

어째서 그런지 한 번 살펴볼까요?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은, 이 포스팅의 초두에 언급한 바가 있는 '미스테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음모에 휘말려들어,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지요. 어떤 루트를 플레이한다 해도, 이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들은 힌트일 뿐, 해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마지막에 탐정이 나와서 '범인은 이 녀석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음모가 있었고 어떤 트릭이 있었는지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탐정의 역할은, 이 이야기를 읽은 '플레이어'에게 내던져질 뿐입니다. 아니, 이미 모든 사건이 비극으로 막을 내렸으니, 플레이어의 역할은 탐정이라기 보다는 그저 주어진 문제를 푸는 학생에 가깝지요. 게다가, 주어져 있는 힌트라는 것도 미미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람이 한 일인지 아니면 무언가 초자연현상에 의한 것인지조차 단정하기 불가능할 정도.
결국 플레이어는 작은 단서에서라도 온갖 상상력을 덧붙여 해답에 이르는 이야기를 구축해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증거 짜맞추기식 추리'가 아닌 이러한 '상상력에 의한 추리'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의 결과가 나오기 마련. 자연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상상하였는지가 중요하고-또 그 상상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나 흥미진진해 집니다.
이곳에서 '게임'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PC 화면을 보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진행하는 게임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두뇌게임.
이것은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 게임에 동참하였고, 그에 따른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올 봄에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정도. 동인 게임의 애니메이션화라는 것은 '월희'와 동등한 기적입니다. 물론 월희가 이미 '동인 게임의 애니화'라는 첫 길을 닦아 놓은 영향이 큰 것은 무시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르라미 울 적에의 성공이 빚바래지는 않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코믹마켓에 발매되는 쓰르라미 울 적에는-오니카쿠시 편/와타나가시 편/타타리고로시 편/히마쯔부시 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문제 편'을 끝내고, 지금은 메아카시편/쯔미호보로시 편/미나고로시 편이라는 이른바 '해답 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올 여름에 발매되는 대단원 '마쯔리바야시 편'만이 남은 상태.
네. 미스테리 사건이라는 문제를 던지는 4개의 '문제 편'이 나왔고, 그리고 아마도 그 문제들의 해답에 해당할 '해답 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다시 묻겠습니다.

이곳에 한 개의 '미스테리 사건'이 있습니다.
범인은 불명, 사용된 트릭도 불명. 오로지 피해자의 절규만이 남아 있는 처참한 사건.
당신은 이 사건에, 어떤 '해답'을 바랍니까?

범인은 누구이다. 그 동기와 트릭은 이러하다.
그런 해답을 바라시나요?

그렇다면
이런 해답은 어떠신가요?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하는 해답 말입니다.


모 추리만화를 패러디하는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그 탐정은 죽을 사람들 다 죽으면 그제서야 범인을 밝혀낸다. 밝혀 내는 것도 그냥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다 모인 곳에서 범행에 사용된 트릭을 하나하나 폭로하며 몰아붙여 결국 궁지에 몰린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꼭 그 추리만화가 아니더라도, 추리물이란 대게 '사건이 발생한 후'의 뒷처리를 하는 내용입니다. 우선은 누군가가 죽어야, 무언가가 없어져야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해답'이라는 것은, 꼭 범인을 잡아내어 그를 감방에 쳐 넣는 것만을 이르는 말일까요?
범인이 잡히고 트릭이 밝혀지면? 그렇게 되면 모두가 행복해 지나요? 살해당한 피해자는 되살아나나요?
그럴 리가 없겠지요. 설사 없어진 물건이 되돌아오고 살해당한 피해자가 되살아난다 해도.
단 한 사람.
범인만은 불행해집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사건을 파해치고 음모를 해부하여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내는 것 뿐. 혹은 사건에 관여된 모두가, 이윽고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에 희생되는 것 뿐.
이것은 해답입니까? 이것이 사건이라는 비극에 주어질 수 있는 '해답'입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는,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품인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불행해졌고, 또 해결과정에서 누군가가 불행해 진다.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 모든 것을 해결할 '해답'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단순한 것.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라는 '해답'을 찾으면 됩니다.


돈이 궁해진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빼았았나요?
그렇다면 그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금전적 상담을 해 줍시다.

질투에 눈이 먼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았았나요?
그렇다면 그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질투를 풀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 봅시다.

외로움에 지친 범인이 결국 자해를 해서 자기 자신을 죽였나요?
그렇다면 그가 자해하기 전에 달려가 그의 외로움을 덜어 줘 봅시다.


사건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설사 우발적인 범행일지라도, 그것이 행해지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길을 찾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해답' 인 것입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플레이어는-그리고 주인공은-필사적으로 자신만의 해답을 찾습니다.
매번 되풀이되는 비참한 사건. 그 범인은 누구이고 어떤 동기와 트릭이 있는지.
사람들이 쓰르라미 울 적에를 '게임'으로써 즐긴 것도 바로 그러한 측면이지요. 범인을 찾아라! 트릭을 찾아라! 동기를 찾아라!

이윽고 발매된 첫 '해답 편'. 메아카시 편에서 그것은 절정을 이룬 듯이 보였습니다.
와타나가시 편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른바 '범인의 관점'에서 보여줌으로써, 범인과 트릭과 동기를 동시에 피로했지요. 아직 남겨진 수수께끼가 여러 개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이 이후 발매될 다른 해답편에 공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메아카시 편에, 이미 해답은 은유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리고, 쯔미호로보시 편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지난 메아카시 편은, '문제 편'의 와타나가시 편에 대한 '해답 편'.
그리고 이번 쯔미호로보시 편은, '문제 편'의 오니카쿠시 편에 대한 '해답 편'.
이번에는 오니카쿠시 편의 범인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 앞에 놓여진 것은,
'오니카쿠시 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한 소녀가 말하는, 일생일대의 노력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극에 휘말려 갑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오니카쿠시 편에서 주인공이 휘말렸던 것과 똑같은 사건.
주인공은-플레이어는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또 똑같은 비극이 일어나 버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극을 막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소녀가 주인공을 믿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동료들을, 믿어 주기만 하면 그걸로 끝납니다.
주인공은 절규합니다. 믿어 달라고.
소녀 또한 절규합니다. 믿을 수 없다고.
그리고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치닫습니다.

믿어줘. 믿어줘. 제발 믿어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이렇게 외쳤을까요. 주인공은 몇 번이나 외치고, 또 플레이어는 몇 번이나 외쳤을까요.
믿어주기만 하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텐데.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길이 여기 있는데.
그리고 그 순간,
플레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해답'이구나.

범인 따위, 아무래도 좋습니다.
사용된 트릭? 동기? 알게 뭐랍니까.
지금 자신은-주인공이자 플레이어는-이토록 강하게 한가지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즉-
이전 루트의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않.게.하.는.데.필.요.했.던.것.은.
그 사건들의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비극을 일으킨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뒤에서 웃고 있을 흑막인 누군가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불행해진 뒤에야 나오는, 두 번 다시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없게 된 뒤에야 나오는 그런 싸구려 자기만족을 일컬어 우리는 '해답'이라 해서는 안됩니다.

범인을 잡고서 '이 녀석이 한 짓이었어!'를 외치는 것이 아닌,
불행 그 자체를 잡아서 '이렇게 되서는 안돼!'를 외치는 것.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그리고 아마도 삶 그 자체에 있어서-'해답'인 것입니다.


누가 범인이라고?
그것을 찾는 이야기인 것이 당연하잖아?

누가 범인이라고?
애초에 '무슨' 범인인지 알고 있어?

누가 범인이야?
나를 이제부터 죽일 범인은 누구?!

《쓰르라미 울 적에-히마쯔부시 편(暇潰し編)의 오프닝》



예를 들자면, 쓰르라미 울 적에에서 그 해답이란 '신뢰'입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발생한 참극들. 우리는 그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고, 트릭과 동기를 밝혀내야 하는가?
범인을 향해 손가락질 하고, 밝혀진 트릭에 감탄하고, 뜻밖의 동기에 분노해야 하는가?
다 죽어버린 다음에,
누군가가 불행해져 버린 다음에,
두 번 다시 예전의 행복은 돌아올 수 없게 된 다음에.
범인을 밝혀냈다고 환호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은 '해답'을 외칩니다.


「......이 세상은 이미 미쳐버렸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포기한다는 건 믿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레나를, 동료라는 끈을 믿겠어. ......그러니까, 아직 괜찮아. 참극은 회피 할 수 있어. 운명에는 저항할 수 있어. 우리들은 발버둥친다. 그리고 움켜쥐는 거야, 그 앞의 미래라는 녀석을 말야!!」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내놓은 '해답'입니다.
다른 추리극에서처럼 '범인은 이 녀석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체가 몇 개나 생긴 후에 나오는 뒷처리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형태의, 그러나 모든 불행을 막고자 하는 진정한 '해답'입니다.
친구를 믿고 타인을 믿자. 그것이 이전의 루트들에서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해답'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해답'을 실천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갑니다.


당신의 갈증을 달랠 수 없어.
진실을 원하는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갈증을 달랠 수 없어.
당신이 기대하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당신의 갈증을 달래주고 싶어.
당신을 사막에 풀어놓은 것은 바로 나이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와타나가시 편(綿流し編)의 오프닝》



아직도 범인이 누군지 찾고 있습니까?
트릭이 무엇이고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하세요?
그 '해답'을 알게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그곳에 남는 것은 자기만족뿐.
범인을 맞추었던 사람에게는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자기만족을, 맞추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진실을 알게 되는 자기만족을.

'쓰르라미 울 적에'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외치는 작품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 소용 없지 않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불행이 어쩌다가 일어났는가를 그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미연에 막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가 아니겠는가.

설마, 게임을 하며 이렇게 엄한 충고를 듣게 될 날이 올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가만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그게 아니었구나'하는 깨달음에 전율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저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감동이라면. 코끝이 찡해지는 슬픔이나, 속이 시원할 정도의 통쾌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라면, 이미 다른 작품들에게서 꽤 여러 차례 맛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 자체에 감동해 본 적은, 작품이 저에게 말하는 한 메세지 그 자체에 고개 숙여 본 적은 아마도 처음입니다.
어찌보면 교묘할 정도로 잘 숨겨져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깨닫도록 연출된 그 전달방법에도 감탄할 따름. 그냥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를 찾아보자'라고 대뜸 들이댔다면, 이런 설득력은 없었을테지요. 충분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또 플레이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에 따른 '해답'에 빠져 허우적댈 때에 조용히-하지만 날카롭게 한마디 하는 충격요법은, 어쩌면 이런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게임'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 집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의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었으니까.

우물 안의 개구리는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에서 그 무엇이 있어도 관계 없었으니까.

그리고 당신도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몰랐으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타타리고로시 편(祟殺し編)의 오프닝》



플레이어는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습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마음껏 헤메이고 쫓깁니다. 범인은 누구지? 트릭은 뭐지? 동기가 뭐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그리고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합니다. 작은 단서에서라도 온갖 상상력을 덧붙여서, '해답'에 이르는 이야기를 구축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상상하였는지 듣고, 자신의 상상을 말해 봅니다.
이것은 두뇌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답'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해 온, 열띤 토론을 통해 쫓아왔던 '해답'은?
그것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공개된 해답은, 범인의 이름도 트릭의 종류도 동기의 폭로도 아닙니다.
그저 '동료를 믿었어야 했다'는 한마디 뿐. 그것이, 4개의 문제 편에서 발생한 참극을 '막을 수 있던' 해답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그 해답에 대한 '오답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한 이는 없었으니까요.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추리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의 진상'이었으니까요.
게시판을 가득 메웠던 글들도, 주위 사람과 열심히 나누었던 토론도. 사실은 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이 원한 '해답'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래서는 게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의도 자체를 읽지 못한, 문제 자체를 잘못 받아들인 두뇌게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전혀 엉뚱한 소란뿐. 게임조차 되지 못하는, 어긋난 목소리들의 집합 뿐.
아니, 게임이 성립하기는 합니다.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두뇌게임이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에도 성립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제작자의 명백한 승리.
플레이어들이 과연 '진정한 해답'을 찾아줄지에 걸어본 제작자의 게임은, 제작자의 일방적인 승리로 그 막을 내린 것입니다.


사막에 비즈를 떨어뜨렸다고 소녀는 울었다.
소녀는 백년에 걸쳐 사막을 뒤진다.

사막이 아니라 바다일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울었다.
소녀는 백년에 걸쳐 해저를 뒤진다.

바다가 아니라 산일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울었다.
정말로 떨어뜨렸는지, 의심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

《쓰르라미 울 적에-메아카시 편(目明し編)의 오프닝》



저는 지금, 막 미나고로시 편을 플레이하는 중입니다. 대부분의 비밀이 이 미나고로시 편에서 밝혀지고, 남은 비밀들도 대단원인 마쯔리바야시 편에서 밝혀진다고 합니다만...
솔직히, 이제 그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흥미가 없군요.
이미 저는, 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료를 믿을 뿐.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그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동료들을 계속 믿을 뿐. 결코,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뿐.
그것이 바로,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방법.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을, 잃지 않는 방법.
이것은, 4개의 문제 편에서 동료들을 의심했던 제가 할 수 있는 쯔미호로보시(속죄)이기도 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세계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당신이 세계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이 질문의 해답을, 저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믿겠습니다'라는 '해답'을.

핑백

  • 책으로 여는 문 : 코난, 쓰르라미 울적에 - 트위터 2011-01-18 06:42:58 #

    ... 타까워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나도 가슴이 아프다.. ;ㅁ; 이럴땐 Seablue님의 시선에서 바라본 '쓰르라미 울적에'가 생각난다. (http://seablue.egloos.com/2214399) 긴 글 읽어보기 싫어하시는 분을 위한 한줄 정리. 반드시 '피해자'가 나올 수 밖에 없고 탐정은 그 '뒤처리'를 하게되고 ... more

덧글

  • 사진기쨩-狂猫 2006/02/19 03:57 #

    은근슬쩍 네타가 있는..
    근데 안주무시고 뭐하십니까
  • sadcafe 2006/02/19 03:59 #

    그러니까 저도 해보고 싶어요......... 한글판으로.. OTL
    시블루님이 일본에 건너가셔서, 이 게임 제작자와 협의하신 후, 한국판권을 사오시는 겁니다!!
  • 그린필드 2006/02/19 04:18 #

    음. 간만에 보는 장문이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게임 하기 전에 너무 진지한 고찰을 보게 되면~_~

    제가 생각할 기회를 잃게 되지요. 머릿속에 너무 깊이 각인이 된달까.
  • gforce 2006/02/19 04:31 #

    멋지군요+_+


    ...그러니까 일맹은 나가죽어야orz
  • 모기자 2006/02/19 04:50 #

    흠흠- 이거참.. 고민하는건 싫어요..(털썩)
  • 지조자 2006/02/19 05:35 #

    으음... 한번 플레이해봐야겠군요.
    인기는 있는줄 알았지만 그렇게 심오한 내용이였다니...
  • 2006/02/19 05:43 # 삭제

    설마 조조를 위해서 밤을 새기로 작정하신건가요..
  • 2006/02/19 06:11 # 삭제

    쓰신 글에 대해서는,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다면, 게임보다는 소설에 가까운거 같네요. 듀나인가 누군가가 '진짜로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게임북(선택지가 있는)보다는 오히려 추리소설이다, 독자가 머리를 엄청 굴려야 하니까' 라고 말했던게 생각납니다. '쓰르라미 울적에'가 선택지가 없다면 게임의 발매일정 조정을 통해서 독자들의 읽는 속도를 강제로 조정하는 방식의 (그리고 그 간극을 통해서 독자의 참여을 능동적으로 끌어들이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물론 게임을 안해봤기 떄문에 완전히 오해한걸수도 있지만..). '제작자와 플레이어와의 게임에서 제작자가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수많은 제작자들이 추구하는 경지일 수도 있겠습니다. 뭐 저는 일어도 모르고 게임도 전혀 안하니까 이걸 접하게 될 가능성은 무한히 제로지만 글만 읽어도 재밌네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6/02/19 07:31 #

    그런식의 게임의 장르가 존재 하는군요.
  • 이리아부친 2006/02/19 08:33 #

    히구라시가 이런 게임이었군요. 모르고 살았습니다.
    세간에서 칼든 교복소녀란거랑 관련 피겨는 반드시 손에 뭔가를 낄 수 있는 해괴망측한 사양이란것밖에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죠
  • 파스크란 2006/02/19 08:55 #

    써놓으신걸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 일어나는군요... 정말 이런 게임이 나올 수 읻다니, 일본 게임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럽습니다. 특히 이제 온라인 밖에 안 만드는 우리나라니 만큼 더더욱 그렇군요. 게임을 해 보지 않았지만 씨블루님의 포스팅 만으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글을 정말 잘 쓰세네요...부러워요 ㅠ,ㅠ
  • 바이올렛♪ 2006/02/19 10:50 #

    단순한 비쥬얼 노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군요!
    더구나 사운드 노벨이고;

    음. 꼭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런데 리플들을 보니... 한글패치조차 없는 듯...?
  • 곰기사 2006/02/19 15:04 #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던 걸 잘 풀어 적으셨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쓰르라미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단순히 재미 면에서만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습니다만, 해답 편을 플레이한 뒤, 쓰르라미는 이제 제게 있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게임이에요.
    이렇게 확고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게 전달한 매체는 드물었거든요.
    코미케와 아키하바라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웃음)
  • Hineo 2006/02/19 19:17 #

    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이름 외에는 그다지 듣지 못했고, 제가 추리 소설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 게임의 제작자에게 이런 반문을 하고 싶습니다.

    "동기를 안다면 분명 범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동기'를 알 수 있는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동기를 해결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만들어주자'라는 값싼 위선을 말하지 마라. 탐정이 행하는 일은 분명 범인 하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비인도적인' 행위지만 그런 행위가 있지 않으면 그 '동기'조차 알 수도 없다.

    사건이란, 그런 숙명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 S : 혹시 이 덧글로 SeaBlue님의 맘에 상하셨다면 조용히 삭제를...(푸욱)
  • SeaBlue 2006/02/20 01:04 #

    사진기쨩-狂猫//자네는 이 시간까지 안자다가 결국 극장 나오는거 실패했구만;;
    sadcafe//한국판권을 사와봤자...불법공유로 본전도 못건질텐데요;;
    그린필드//토호호홋. 적당히 시간이 흐른 후 플레이를 해 보시면..;;
    gforce, 바이올렛♪//오니카쿠시 편은 한글패치도 있어요ㅣㅣ
    모기자//에? 어째서 고민이?;;
    지조자//이 글을 보고 한분이라도 쓰르라미 울 적에의 세계에 빠지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
    곽//웅..상당수의 플레이어가 나처럼 발매 다 된 다음에 한번에 몰아서 플레이했을 듯;; 그리고 확실히 게임이라기에는 정말 애매하지.
    사바욘의_단_울휀스, 파스크란//정말 물건너 나라는 대단합니다;;
    이리아부친//...어쩐지 그런 이미지로 유명하지요;; ..아예 틀린 것은 아니지만;;
  • SeaBlue 2006/02/20 01:04 #

    곰기사//토호홋. 예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카레 음모설도 올려야 할텐데요;;
    Hineo//아, 그것은 게임 특유의 모 방법을 이용해서 해결합니다. 물론 그것은 '게임에서 가능한 방법'이기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그래도 최소한 '불행이 일어나기 전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 메세지는 강하게, 설득력 있게 와 닿지요. 제작자도 그것을 원하는 듯 하고. 기분 상하다니요. 보잘 것 없는 글 읽고 의견까지 말해 주셔서 감사~
  • paper2k1 2006/02/21 08:55 #

    SeaBlue님 때문에 저 요즘 이거하고있죠..흐흐
  • SeaBlue 2006/02/22 10:56 #

    paper2k1//우후훗. 그러시다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 거래창 2006/11/01 19:51 # 삭제

    멋진글이군요.. 츠미호로보시하면서 펑펑 울어버렸던 저로썬 찡할정도로 와 닿는 글이였습니다. 이런 멋진 글을 써 주셔서 감사.
  • 사화린 2007/01/03 22:46 #

    안녕하세요-

    다른 어딘가에서(!) 이 리뷰를 보고
    대략 감동먹었던 한 사람입니다 -0-;/

    이 리뷰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얼음집에 와서(이글루 시작한지 이제 2달쯤 됬어요 ^^)
    적으신 분을 발견(!)하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아 T_T

    어설픈 리뷰를 끄적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존경합니다아~! (어이..)

    아, 링크양 납치해갑니다 /ㅁ/

    - p.s :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도 라이더누님 모에!! T_Tb
  • 보름달 2009/01/02 16:58 # 삭제

    블러그에 글남겨주셔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와 쓰르라미 울적에의 요점 중 호러와 스릴러로 나뉘는 부분에서 호러성보다 탐정물을 강요한 글귀가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보통은 호러쪽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원작 체험자와 애니 감상자의 시각적 차이겠죠.^^;; 저 같은 경우는 원작가 애니메이션을 같이 비교하면서 호러도 스릴러하고도 거리가 뭔 글을 써버렸지만, 글 전체적인 흐름도 좋고 읽으면서도 쓰르라미 울적에의 매력이라 할 수있는 단순 스릴러가 아닌 그안에 스며있는 내용까지 잘 적어주셔서 글 읽으면서 쓰르라미 만에 또다른 매력을 찾았습니다.^^

    /PS 조만간 쓰르라미 울적에를 재포스팅할 생각인데 나중에 이 글도 좀 참고하겠습니다.^^
  • 힐름엔비어 2009/09/03 23:48 #

    언제봐도 제일 감동적인 리뷰입니다 =ㅂ=....

    쓰르라미 울적에 영상리뷰를 작성할 예정인데 이 글을 조금 참조해도 될런지요? -_-a
  • 미지 2011/01/18 08:27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냥 뒤통수치는 전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었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