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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동화'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하늘에는 햇님과 달님이 웃고 있고, 꽃밭에서 동물들이 뛰놀고, 아이는 하늘하늘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가며 웃는 그런 느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동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느낌은 위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위한 순진무구한 이야기, 꿈 같은 이야기. 어째 이 동화라는 것에 나오는 동물들은 언어능력 정도 기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옷도 입고 말이지요. 뭐, 호랑이가 흡연하는 세계라는 것이지요. (요즘은 '사실 전래동화란 잔인한 이야기이다'라는 것을 무척 '상업적'으로 어필하는 덕분에,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는 인상은 많이 줄었을지도 모르겠군요 ^.^;; ) 자,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동화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매캐하다'는 것입니다. 약간 뜬금 없나요? 호랑이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대서 매캐한 것도 아닐테고.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보지요.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나요? 자신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깊은 이야기를 마주 하였을 때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경험이. 무엇인지 아예 알지도 못한다면 차라리 나을텐데, 그저 '무엇인지는 대략 알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것을 이해할 수는 없구나'라는 것만이 뼈저리게 와닿는 그런 감각이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마주할 때, 머리 속에 연기가 가득 찬 듯 매캐한 감각을 느낍니다. 어릴 적부터. 그리고, 저는 어릴 적 본 동화에서 얻은 강렬하기 그지 없는 '그 느낌'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도 '동화'라고 하면 그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희뿌연 연기가 가득찬 정신 속에서 기침을 하며 생각합니다. '매캐하다'라고. 이상하게 보이겠지요. 무슨 양자역학 논문을 보는 것도 아니고 '고작' 동화를 보면서 그런 감각을 느낀다니. 동화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그런데 어린 제가 읽고는 지금의 나는 저것을 이해할 수 없네 운운하고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느낌을 잊지 않다니요. 어린 시절의 저는 어지간히 바보 같은 녀석이었던 것일까요.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일의 주범은 단 한 편의 동화 때문입니다. 지금도 '동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편의 이야기 덕분에, 저는 가히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머리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의 제목이 바로─ '인어'입니다. "정말 잊을 수 있어요?" "그럼 어쩝니까?" "그 텅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웁니까?" "눈물과 한숨을 가득 담아 두지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인어'의 한 구절입니다. 남자에게 여자(인어)가 묻습니다. 정말 잊을 수 있냐고. 남자는 반문합니다. 그럼 어쩌냐고. 그러자 여자가 또 되묻습니다. 그 텅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거냐고. 그리고 남자는 말합니다. "눈물과 한숨을 가득 담아 두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이 6살 때 입니다. 책장에 가득히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 한 질씩은 있는 그것) 중에서 골라든 '한국현대동화'라는 책. 그 책의 중간 쯤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바로 이 '인어'였습니다. 초반부에는 나름대로 햇님 이야기도 나오고 곰 아저씨 이야기도 나오고 꽃과 나비의 사랑 이야기도 나와서 열심히 읽었는데...중반에 부닥친 것이 바로 이놈이었던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대화줄기 사이로 흐른 문답. 그야말로 동화 같은, 약간은 꿈 같이 몽롱하게 이루어지는 주인공과 인어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여섯 살 짜리 꼬마는 "눈물과 한숨을 가득 담아 두지요"라는 문구를 보고야 맙니다. 기절할 정도로 '매캐'했습니다. 차라리 어른용 소설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면 제대로 인지조차 못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인어'는 '동화'였습니다. 게다가 그 장르의 특징을 충실히 수행한, 아이들답게 순진무구하고 꿈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문체도 너무나 멋지게 동화스러웠지요. 주인공은 20대 중반 이상으로 여겨지는 남성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이끌려 바다를 찾아온 주인공은 인어를 만납니다. "아, 인어로구나" 인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리고 그림 같은 데서는 본 적이 있지만, 정말 이렇게 하반신이 고기 꼬리로 된 사람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자세히 보니 몸에는 전부 고기 비늘 같은 것이 돋아 있었습니다. 인어가 나와도 주인공은 '아, 인어로구나'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화니까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인어의 말을 듣고 주인공은 고민 끝에 '인간이 되는 법'을 고안해 냅니다. "뭔데요?" "민들레 씨" "네? 민들레 씨라니요?" "꽃씨지요" "이걸 왜 먹으라십니까?" "글쎄 먹어 봐요. 당신의 살도 우리 사람과 같아질는지 모르니까요" 꽃씨를 먹은 인어는 정말로 인간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동화니까요. 그리고 주인공과 인어는 결혼합니다. 우리들의 결혼식은 옛날 얘기에 나오는 왕자나 공주의 그것같이 찬란하고 굉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에서 나는 값진 보화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바다 속에 가득한 진주와 산호로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동화니까요. 이렇듯, '인어'는 기본적으로 '동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아니, 동화니까 당연합니다만). 인어를 발견했다고 기겁을 하며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고려하는 것도 아니고, 인어와 결혼할 때 주민등록과 호적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바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동화니까요. 언제 동화에서 나비와 꽃이 사랑할 때 자신들의 생물학적 차이로 고민을 하던가요? 호랑이가 담배 필 때 호랑이 발로는 라이터를 켤 수가 없어서 전용 라이터를 고안하던가요? 동화는 꿈 같은 세계입니다. 아이들의 꾸밈 없는 상상력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인어'는 엄연한 '동화'입니다. "눈물과 한숨을 가득 담아 두지요" 그렇기에 이것은 '어른'의 대사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의 대사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 바깥에서 하는 현실 이야기가 아니라, 꿈 속에서 하는 현실의 이야기. 그렇기에 어린이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아이들 세계의 주인공이 한 말이니까요. 그렇기에 어린이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 세계 너머 현실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한 말이니까요. 그것은 까마득한 벽이 되어 6살짜리 꼬마 아이의 눈앞을 막아섰고. 저는 그 벽을 볼 수 있되 넘을 엄두는 못내는, '무엇인지는 대략 알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것을 이해할 수는 없구나'라는 바로 그 느낌─ '매캐하다'는 감정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그 후로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 주인공과 인어의 결혼 후 이야기가 나오고, 그 딸의 이야기가 나오며 '동화'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매캐해 졌습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제 인생에서 읽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마무리가 될 끝 문장을 마주하고는 저는 토할 듯한 어지러움과 함께 책을 닫아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이었던 남자에게, 너무나도 압도적인 '현실'이 노도같이 밀려들어오는 그 마지막 문장. 그마저도 '동화 같은 현실'이라는 잔혹함. 그 문장 그대로, 저는 정신이 아찔해졌던 것입니다. 그 충격이 너무나 컸기에, 저는 아직도 '동화'라고 하면 그 때의 매캐한 느낌이 너무나 선명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나마 한 번이라면 양호할 텐데.... 나중에 초등학교 올라가서 산 동화책이 '꿈을 찍는 사진관'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꿈을 찍는 사진관에 찾아가 꿈을 찍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어른 남자입니다. 철저하게 동화인 주제에,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른의 전유물인 '추억'을 말합니다(동화를 읽을 나이의 어린이는 제대로 된 의미의 '추억'을 소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요?). 또 엄청난 '매캐함'을 얻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어'의 작가와 '꿈을 찍는 사진관'의 작가는 동일인물. 바로 아동문학가인 강소천 씨 였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업적을 남긴 훌륭한 아동문학가이셨던 강소천 씨...입니다만, 작품들 중에는 평범한 '아동문학'과는 그 선을 달리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 시기-해방 전 및 6.25 직후-의 아동문학은 그런 경향이 상당히 강합니다만. 예전에 유행한 '알고 보면 잔인한 XX동화' 같이 유치찬란한 느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잔인한 깊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병약한 딸을 혼자 놔두고,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밖에 나가 일하는 홀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딸을 위해 꽃을 따와 꽃병에 꽂아주고, 이 꽃(물론 의인화 되어서 언어능력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과 딸의 동화 같은 이야기(아니, 그러니까 동화 맞지만;;)가 펼쳐 집니다만......어머니가 밖에 나가 일하는 사이 소녀는 심한 열에 의한 목마름에 시달리지요. 동시에 꽃병에 물이 부족해진 꽃도 목마름에 시달립니다. 소녀는 어머니를 찾으며 '물! 물...!'하고 애타게 외치고, 꽃도 함께 '물! 물...!'하고 애타게 외칩니다. 하지만 일하러 나간 어머니는 당연히 올 줄을 모르고... '물!'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소녀와 꽃은 동시에 죽어버리지요. 이것도 어려서 읽고 '매캐함'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이런 걸 '취학 전 아동용'으로 내놓지 말아 줘;;;;(이건 이원수 씨의 작품이었던가...) 뭐 어려서부터 그런 걸 듬뿍 읽은 덕분에 지금과 같은 맛 간 감수성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런, 이야기가 엉뚱하게 새어 버렸군요. 하여간 이것이 바로, 제가 '동화'라는 것에 다소 독특한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이랍니다. 특히나 어린 시절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강소천 씨의 작품 '인어'에 얽힌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얼마 전 다시 한 번 '인어'를 읽어 보았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6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때처럼 꿈 속에서 하는 '현실'의 이야기를 보며 충격을 받지는 않지요. 은근히 '아, 이것은 이걸 비유하고 있구나', '아, 이 장면에서는 그걸 말하고 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대신, 지금은. '꿈' 속에서 하는 현실의 이야기를 보며 충격을 받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더 이상 6살 꼬마의 머리로 상상할 수는 없기에. 현실을 이해하는 만큼 꿈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막연히 '어릴 때는 이렇게 생각했었는데'라고 되새길 뿐. 순간, 머리 속에 견딜 수 없을 만치 한 가지 감각에 휩싸입니다. 그저 '무엇인지는 대략 알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것을 이해할 수는 없구나'라는 것만이 뼈저리게 와닿는 그런 감각을 느낍니다. '매캐하다'.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어른'의 발걸음이 이제야 와닿기 시작합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감상을 너무나 엉망진창으로 써 놓았기에, 대신하여 이곳에 '인어'의 전문을 기재해 봅니다. 그저 손발을 버둥댈 뿐인 저의 이야기를 읽는 것 보다, 작품 자체를 직접 보시는 편이 백배 나을 듯. 아래 이야기를 6살 짜리가 읽었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인어-강소천 나의 조상은 대대로 바닷가에서 살았답니다. 그래서 나도 바다가 못견디게 좋았는지 모릅니다. 밤낮없이 출렁대는 바다는 내게 있어 어머니의 품같이 정다운 곳이었고, 또 즐거운 놀이터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조무라기 동무들과 바닷가에 나가 모래성을 쌓기도 했고 얕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놀기를 무척 즐겼습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친구를 가릴 줄도 알고 몰래 사귀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처녀와 함께 일부러 가까운 바다를 두고 먼 바다로 해수욕을 갔었습니다. 낯모를 사람들 틈에 섞여 맘놓고 한여름 지내 보려고 해서였습니다. 지금도 눈 앞에 선한 그 처녀의 날씬한 몸매 - 희디흰 살결 - 나는 그 처녀를 '인어'라 불렀습니다. 나도 남만 못지 않게 헤엄을 잘 쳤지만, 그 처녀는 나보다도 무척 더 헤엄을 잘 쳤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어린아이 모양 모래 장난을 하다간 둘 중에 누가 머리에 모래를 뿌리곤 먼저 바닷물로 뛰어듭니다. 그러면 남은 사람이 연방 뒤쫓아 바닷물로 뛰어듭니다. 정말 바다는 즐거운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나는 혼자 그 바닷가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 처녀는 자기의 헤엄 잘 치는 재주를 믿고 바다로 자꾸 헤엄쳐 가버리고는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처녀는 인어의 피를 받아가지고 난 것이나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척의 배들이 별별 수단을 다해 보았으나, 그 처녀의 시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부터 나는 헤엄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바닷가까지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이 오면 또 바다를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나는 해마다 잊어버린 그 처녀를 생각하고 또 그 바닷가를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한여름을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우두커니 먼 바다만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 뒤에 안 일이지만 - 그게 바로 그 처녀가 먼 바다로 가버리던 그 날짜였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쪽 먼 바다로부터 날 오라고 손짓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얼마나 헤엄쳤는지 내 앞에는 조그만 섬이 하나 나타났고 그 섬 위엔 머리채를 삼단같이 늘어뜨린 처녀 하나가 앉아 있었습니다. "참 용감하군요. 아직 아무도 여기까지 헤엄쳐 온 사람은 없는데……." 하며 반겨 맞아 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신데 이런 외딴 섬에 혼자 앉아 있소?" "보시는 바와 같이……." 하며 그는 머리채로 가리었던 몸뚱이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아, 인어로구나." 인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리고 그림 같은 데서는 본 적이 있지만, 정말 이렇게 하반신이 고기 꼬리로 된 사람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자세히 보니 몸에는 전부 고기 비늘 같은 것이 돋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놀라거나 또 놀라워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무어라 할 말을 몰랐습니다. "당신의 그 뜨거운 사랑이, 그 안타까운 그리움이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퍽 실망하셨지요? 그 여자는 이 바다에는 인젠 없습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육지에서 생긴 일은 전혀 모르지만 이 바다에서 생긴 일은 낱낱이 알고 있지요." "그러면 영원히 다시 만날 수는 없을까요?" "글쎄요. 저 하늘에 가서 영혼으로나 만날 수 있을는지요. 그런 건 우리 인어들보다 당신네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고맙소. 단념해 버리지요. 바다를 깨끗이 잊어버리지요." "정말 잊을 수 있어요?" "그럼 어쩝니까?" "그 텅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웁니까?" "눈물과 한숨을 가득 담아 두지요." "아이, 가엾어라.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나는 인어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반겨 당신의 사랑이 되겠어요." "그 소원이란?" "날 사람이 되게 하여 주셔요. 당신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런 여인이 되게 하여 주셔요." "사람이……여인이……." 나는 그의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도 영원히 바다를 잊을 수만 있다면 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드리지요." "전 이제 바다가 싫어졌어요. 바다란 너무 쓸쓸한 곳이예요." "그렇지만 바닷 속엔 산호며 진주며 수없는 어족들이며 해초들이 있지 않아요. 땅 위의 꽃에 못지 않을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아요?"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일……사랑을 받는 일, 그것밖에 더 위대하고 큰 게 어디 있어요." "딴은……." 나는 다시 바다로 헤엄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고 그 인어 아가씨를 잊으려 애를 썼으나 도무지 잊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 단 한 가지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어 아가씨를 정말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법을 연구하여 그 보기 흉한 비늘과 고기 꼬리를 예쁜 사람의 몸뚱이와 날씬한 두 다리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인어 아가씨를 잊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얼마쯤 두고 골똘했던지 내게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엉뚱한 지혜가 생겼습니다.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어 그 방법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 다시 인어 아가씨가 있는 섬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왜 오랫동안 오시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리워 죽어버리고 싶었어요." "당신을 데려갈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그랬지요." "그럼, 오늘은 데리러 오셨어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인어 아가씨는 좋아라 내 곁에 다가앉았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나의 슬기를 다 짜내어 생각해낸 방법 - 자, 이걸 어서 먹어봐요." "뭔데요?" "민들레 씨." "네? 민들레 씨라니요?" "꽃씨지요." "이걸 왜 먹으라십니까?" "글쎄 먹어 봐요. 당신의 살도 우리 사람과 같아질는지 모르니까요." 인어 아가씨는 곧 내가 주는 민들레 씨를 받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에 놀란 사람 모양 전신을 부르르 떠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민들레 씨가 바람에 흩날리듯 아가씨의 전신에 다닥다닥 붙은 비늘이 부실부실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하니 미칠 듯 기뻤습니다. "자아, 이번엔 이 약을……." 하고 나는 이번엔 봉숭아 꽃씨를 한 움큼 주었습니다. "이걸 다 먹어요?" "어서 먹어요." 아가씨는 그걸 받아 은단알을 씹듯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큰일이 났습니다. 아가씨는 그만 술취한 사람 모양, 아니 독약이라도 마신 사람같이 곤두박질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왜 이래요? 진정하시오." 하였으나 아가씨는 정신없이 몸을 비비 틀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물 속에 사는 고기를 땅 위에 들어내 놓았을 때와 꼭같은 짓이었습니다. 이상한 일도 있습니다. 봉숭아 씨 주머니가 바람에, 아니 저절로 툭 튀듯 아가씨의 고기 꼬리 같은 하반신이 딱 갈라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곧 그것은 두 다리로 변하고 발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가씨는 꿈에서 꺤 듯 감았던 눈을 뜨며 일어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당신이 소원하던 대로 당신은 인제 나와 꼭같은 사람이 된 것이오. 자, 어서 육지로 나갑시다." "고맙습니다. 저는 인제 영원히 당신 것이어요." 우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오랫동안 부둥켜 안았습니다. 우리들의 결혼식은 옛날 얘기에 나오는 왕자나 공주의 그것같이 찬란하고 굉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에서 나는 값진 보화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결혼식을 끝낸 우리는 화려한 도회지보다는 조용한 산 속을 택했습니다. 그 하나의 큰 이유는, 나는 내 아내에게 영원히 바다를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름이고 겨울이고 산 속에서 살리라 마음 속으로 정해버린 것입니다. 결혼한 우리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산 속이라고는 하여도 돈만 있으면 무엇이고 없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쁜 꽃밭을 만들고 온갖 악기를 사들여 날마다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내도 처음엔 육지 생활이 다소 낯설었고 서툴었으나 일 년이 못 가 아주 육지의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삼단같이 길다란 머리는 예쁘게 잘라 온갖 장식품으로 머리는 반짝였고, 옷도 가지가지 짯짯한 원색으로 바꿔 입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아내는 빨갛고 노랗고 초록빛깔 같은 색깔보다는 늘 짙은 하늘빛을 좋아했습니다. 하늘빛 -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으나 사실 그것은 하늘빛이 아니라 바다빛이었습니다. '아직도 아내는 바다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맘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우리들 사이엔 예쁜 아기가 생겼습니다. 아기는 무척 귀여웠습니다. 인젠 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기의 옷을 사러 오랫만에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우린 천천히 거리 구경을 하며 걸었습니다. 얼마 안 가 아내는 어디 음식점에라도 들어가 앉자고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길가 조그만 음식점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아내는 변소에 갔다 온다고 곧 일어섰습니다. 5분, 10분을 기다려도 아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아기를 안고 음식점을 나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나는 문득 아까 어느 염색소 앞을 아내와 함께 지날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벌써 아내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염색소 이층엔 진한 하늘색, 아니 바닷색 물감을 들여 늘어뜨린 수많은 피륙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아내는 갑자기 바다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냥 단숨에 아기를 버리고 바다로 달아나 버렸을 것입니다. 굳이 다시 아내를 찾아 바다로 갈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기와 나를 합한 사랑과 바다 그것과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그것을 저울질하고 아내는 다시 산으로 돌아오든지 영원히 안 돌아오든지 할 것이지, 내가 찾아가 사정할 따위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나는 다시 산 속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는 유모를 만났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이 잘 자랐습니다. 한 해 이태, 나는 아기가 자라면 자랄수록 어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를 영영 바다와 함께 잊어버리리라 이를 갈며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아기와 나를 찾아 아기 어머니가 돌아만 온다면 나는 반겨 맞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됩니다. 내 아기 나이 여섯살 되던 해에 생긴 일입니다. 나는 아기에게 재미있는 그림책을 사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크레용과 도화지도 사다 주었습니다. 나는 그림책을 살 때마다 언제나 바다가 있는 그림책은 사질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배가 있는 그림책도 사지 않았으니까요. 동물 식물을 그린 그림책과 기차 자동차 같은, 태엽만 감으면 저절로 움직이는 장난감 같은 것을 얼마든지 사다 주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하얀 벽에 무엇이 가득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이거 어디서 보고 그렸느냐고 묻기가 무서워졌습니다. 나는 이 이상 바다를 피하여 이런 쓸쓸한 산 속에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전차 소리, 자동차 소리, 요란한 음악 소리……그러나 내 아이는 그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아이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문 밖에서 '뚜우-'하는 그다지 크지도 이상할 것도 없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는 무엇에 놀란 사람 모양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닫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 곧 아이의 뒤를 따라 나가 보았습니다. "얘! 그거 나 줘!" 입에 물고 '뚜우- 뚜우-' 부는 아이에게 내 아이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주어라. 내 아주 훌륭한 자동차를 줄께……." 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약속대로 몇 개의 장난감을 들고 나와 거기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너희들, 얘하고 정답게 놀아줘라, 응?"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아이가 '뚜우, 뚜우' 부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소라로 만든 퉁소였습니다. '어머니를 닮아서 너 역시 바다가 그리운 모양이구나…….' 나는 내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뒤 나는 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늘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내 아이는 그 값비싼 장난감을 들고 나가선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버리고 그 대신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을 수두룩이 방바닥에 벌여놓고 노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우리 이번 여름엔 바다에 갈까?" "바다가 뭔데요?" "소라와 조개와 물고기들이 사는 곳이 바다란다." "아이 좋아." 내 아이는 기절이라도 할 듯이 좋아 날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