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도 없던 캐릭터 등신대 판넬이 도착했습니다 폭음감상

때는 바야흐로 4월 말. 바쿠온 캐릭터 굿즈를 파는 매점이 신쥬쿠에 기간한정으로 열겼다길래 털레털레 가 본 것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모처럼 먼 길(전철로 편도 1시간!)을 갔건만, 정작 매점은 보는 제가 불쌍할 정도로 초라하더군요. 애초에 캐릭터 상품이 잔뜩 나오는 초인기 작품도 아니고, 하다못해 역사가 긴 작품도 아니다 보니 매점을 채우고 있는 건 고작 대여섯 종류 밖에 안 되는 허접한 상품들 뿐. 아니, 매점을 '채우고' 있다는 표현은 틀렸군요. 몇 종류의 상품들이 매점 한 켠에 놓여져 있을 뿐, 나머지는 그냥 빈 공간이라는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벽 한쪽에 전시해 놓은 캐릭터들 등신대 판넬이 가장 눈에 뜨이더군요.
물론 이 판넬들은 '비매품'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런 걸 살 생각도 없지만서도요;;;

어쨌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없는 상품이나마 긁어모아 계산을 하니 점원 왈, 뽑기를 돌리랍니다. 그 왜 있잖아요. 일본만화 보면 자주 나오는, 손잡이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 구멍으로 구슬이 톡 나오는 그거(그리고 주인공들은 100%의 확률로 온천여행권을 받는 그거요;;;). 3000엔 이상 구입한 사람은 그 뽑기를 돌리게 해 준다고 하더군요. 뭐 대충 스티커 같은 종이 쪼가리나 주겠거니 하고 돌려보니 톡 튀어나온 건 빨간 구슬. 1등은 금구슬 같은 거일테니, 이건 꽝인가 보구만...하는 순간 갑자기 터진 점원의 외침. "오오오!!!!!!"
어? 뭐야? 좋은거야? 나 좋은 거 뽑은거야??? 혹시 피규어 같은 초 호화상품??!! 내 운이 오늘 터진건가!!!!!
그리고 점원의 한 마디. '축하드립니다. 저 뒤에 있는 판넬 중 하나를 골라 주세요'.
...뒤에 있는 판넬?
.....................................설마
이거?

아니아니아니아니;;;; 저거 등신대 판넬이라구;;; 사람 키 만하다구;;;;;;;; 저걸 나보고 갖고 가라고? 저걸 들고 전철을 타라구?
바로 사진 찍혀서 인터넷에 '전철 판넬남'으로 등극할텐데;;;;;;
점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정말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진짜 키만한 걸 어떻게 끌어안고 집에 가요. 게다가 만화 여자 캐릭터가 커다랗게 그려진 걸!!! 게다가 고생해서 들고 가 봤자 쓸 데도 없잖아! 저걸 집에 두고 뭐하라고!;;;
이걸 어떻게 완곡하게 거절하나. 점원도 당황할 텐데...하고 고민하고 있으려니, 점원이 종이와 펜을 넘기더군요.
'여기 주소를 적어주세요'
주소? ....아, 설마.
배달해 주는거야?
'??? 네. 당연히 무료로 배달해 드립니다'
다행이다!!! 저걸 들고 전철 타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철 판넬남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차, 저걸 받아서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이지 않더군요. 그때 조금만 더 냉정했었어도 '결국 필요 없기는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을텐데;;
하여간 종이에 주소를 슥슥 적고, 판넬을 골라볼까. 아니 고를 필요도 없지요. 제가 선택하는 건 당연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스즈노키 린!!! 이리 오거라 린!!!!!!
'아, 이거랑 이거는 이미 다른 손님이 먼저 고르셨으니 제외해 주세요'
그런 말과 함께 점원이 손가락으로 척 척 가리킨 건...린과 하네.
아 그런건가. 나 말고도 먼저 빨간 구슬을 뽑은 이들이 두 명 더 있었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바쿠온 최고 인기 캐릭터인 린과 주인공인 하네를 쏙 꼴라 버린건가.
..................이런 젠장!!!!!!!!!!!!!!
가뜩이나 처치곤란인 물건인데, 하다못해 좋아하는 캐릭터로 받을 수 조차 없다니 이 무슨 아포칼립스! 거절할까? 역시 필요 없다고 하고 달려서 도망쳐 버릴까?
하지만 이미 주소까지 적어버린 몸. 도망쳐 봤자 늦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온 몸으로 느끼며, 저는 스즈노키 린을 제외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캐릭터인(그리고 제가 타고 있는 바이크들의 메이커인 카와사키를 담당하는) 라이무 선배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저거...로 주세요"

그리고 오늘, 문 밖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나더니만 이윽고 울려퍼지는 초인종.
'택배 왔습니다~'
뭔 택배지? 주문한 것도 없는데? 하며 나가보니 문 앞에는 거대한 판넬을 끌어안고 있는 택배 아저씨의 모습.
......왔구나.
물건을 건네줄 때 택배 아저씨가 지은 표정(정확히 말하자면, 애써 외면하려는 그 눈빛. 택배 아저씨...상냥하신 분이군요)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라이무 선배, 어서 오세요.
크기 비교용 고양이(8kg. 무직)와 함께. 발톱으로 툭툭 건드려 보는게, 놔뒀다가는 고양이 발톱긁개로 쓰이겠다 싶어 바로 창고로 쓰이는 건너방에 넣어두고 문을 닫았습니다.

뜻밖의 뽑기 운이 부른, 어느 초여름의 작은 사건.
...이 운으로, 로또를 긁어볼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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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크레멘테 2016/06/15 23:51 #

    하다못해 린이었다면.....ㅠㅠㅠㅠㅠ
  • SeaBlue 2016/06/16 00:15 #

    진짜 린이었다면 나름 기뻤을텐데 말이지요 T.T
  • 주사위 2016/06/16 08:56 #

    인기캐릭은 먼저 뽑혔고 보낼때 포장 좀 잘 해주지 ㅠㅠ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하기엔 슬프네요.
  • SeaBlue 2016/06/16 09:16 #

    그냥 뾱뾱이 비닐로 싸서 보냈더라구요. 하다못해 종이 같은 거라도 둘러서 내용물이 안 비치게 해 줬다면... T.T
  • Licmin 2016/06/16 12:23 #

    라이무선배 나이가 대체...
  • SeaBlue 2016/06/16 13:44 #

    저보다도 나이가 많으시지요......
  • CAL50 2016/06/16 12:41 #

    어쩌다가 여체화 스티그를 얻으신겁니까 ㅠㅠ
  • SeaBlue 2016/06/16 13:46 #

    여자 캐릭터 등신대 판넬을 집에 두고 있으면 빼도박도 못하는 변태이지만, 저건 그나마 개그용품으로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무리겠지요?;;;
  • 수저의 멜로디 2016/06/16 15:11 #

    라이무 센빠이면 왠지 방에 둬도 변태취급 안 받을거 같기도 한데말이죠.
    역시 린이 아깝긴 합니다만....
  • SeaBlue 2016/06/16 19:34 #

    아니면 아예 온사 아버지 등신대 판넬을...!! -.-ㆀ
  • 라피스 2016/06/16 23:57 # 삭제

    그 와중에 온사가 남아있다는게 슬픕니다 ㅠㅠ 저라면 무조건 온사 골랐을텐데 흑흑
  • SeaBlue 2016/06/17 00:11 #

    그래도 히지리 보다는 먼저 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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